아더 핑크

아더 핑크의 거듭남 6

주와 복음을 위하여 2017. 1. 14. 15:45


5장 거듭남의 증거들
 
 
거듭난 사람들에게서 어떤 열매들을 찾아볼 수 있는가? 거듭났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어떻게 내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가?
 
이것들은 아주 중요한 질문이며,
이에 대한 명백한 해답을 구하는 모든 진지한 질문자들은 중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거듭남의증거들은 무엇인가?
보다 더 상세한 대답을 드리고자 한다.
 
 
1.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개인적인 믿음이 있다.
 
● 무엇인 거듭남의 증거인가?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요 3:3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헬라어에서 이 동사는 과거완료형으로 되어 있다.)"(요 5:24)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헬라어에서 이 동사는 과거 완료형으로 되어 있다.) 자니" (요일 5:1)
 
이 말씀들에서는 우리는 주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이미 영생을 소유하였고,
다른 말로 하면 거듭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를 참으로 의지하는 믿음이 있는 곳에는
거듭남의 분명한 증거가 있다.
 
만일 당신 자신의 행위로 구원받고자 하는 바램을 버렸다면,
그리스도의 용서에 의지하여 더러운 걸레 같은 당신 자신의 의를 내버렸다면,
방황하고 의지할 것 없는 죄인의 모습으로 그리스도께 나와 그의 긍휼을 구했다면,
능히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그분께 의지했다면,
이것이 바로 당신이 이미 거듭났다는 증거가 된다.
 
마치 아기가 본능적으로 엄마에게 매달리듯이,
갓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도 무력한 채로 구세주이신 하나님께 매달리게 되어 있다.
 
 
2. 죄에 대한 참된 회개가 있다.
 
● 죄인의 회개와 신자의 회개와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신학적인 개념에서 회개는 보통 믿음 이전에 일어나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보통 복음서에서도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막 1:15)는 순서로 되어있다.
그래서 흔히 "회개하고 회심하라. 그리하면 당신의 죄가 사함을 받을 것이다."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요점을 살리기 위해 그 순서를 바꿔 보자.
사실 죄인의 회개와 그리스도인의 회개는 차이점이 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에게
회개란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이며, 내 자신의 타락한 상태에 대한 깨달음과 인정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잃어버린바 된 죄인의 자리에 서는 것이다.
 
하지만 신자에게 있어서 회개란
죄로 인해 넘어질 때마다 죄에 대한 혐오와 마음의 근심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신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통해서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하게 된다.
 
● 회개가 무엇인가?
 
하지만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 (godly sorrow; 경건한 슬픔)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성품이 이미 내 안에 있음을 의미하는데,
죄인은 그 안에 이것이 없다.
 
회개란 죄에 대해서 슬퍼하고 근심하는 것 그 이상이다.
회개란 바로 "하나님 뜻대로하는 근심" 이다.
 
교도소 안의 많은 죄인들은 죄에 대해 슬퍼하고 또 근심하기도 하지만,
오직 하나님의 자녀만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회개를 경험한다.
 
나는 내 죄과에 대한 형벌이 두렵고 끔찍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죄를 미워하시고 하나님의 눈에 죄가 끔찍이도 극악한 것임을 알기에 회개한다.
 
회개는 하나의 행위 그 이상의 것이다.
이것은 마음의 태도 문제이다.
 
회개는 죄에 맞서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다.
한 마디로 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셔서 죄를 미워하시기 때문에,
내가 만일 그의 자녀라면 내 안에 그의 거룩한 성품이 존재하므로
결과적으로 죄를 범한 일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받을 때
죄를 한탄하며 또한 죄에서 떠나는 것이다.
 
 
3. 하나님을 향한 참된 사랑이 있다.
 
●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께 사랑이 있는가?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또 우리 속에 하나님의 성품을 심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미워한다.
 
하지만 이것은 지극히 소극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또 우리를 낳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사랑한다.
 
여기에 거듭남에 대한 적극적인 원리가 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일 4:16)
 
이것은 그 부모를 사랑하는 자녀의 정상적인 상태이다.
반복하지만, 거듭난 사람은 자신을 거듭나게 해주신 분을 사랑할 것이다.
 
●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확실히 이 질문은 불필요하다.
우리는 우리 존재 사실에 대한 자각 없이는 누구를 진실히 사랑할 수 없다.
 
즉 우리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각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의 감정은 하나님을 향해 끌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탁월하심이 우리의 마음을 감화 감동시킨다.
 
이제 우리도 시편 기자와 함께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시 73:25)
라고 고백하게 된다.
 
더욱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의 주된 갈망은 그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말씀하셨다.
 
● 인간이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고도 사랑할 수 있는가?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7,8)
 
이 말씀은 앞 절의 생각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순서를 잘 관찰하여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앞서 있다.
 
인간적인 영역에서는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기 전에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야하지만,
 
하나님을 알기 전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 14:1)
 
그렇다면 나는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그의 모든 아름다움을 보고 그를 사모하는가?
그를 묵상함이 꿀보다 더 단가?
내가 엎드려 경배할 단 한 분이신가?
그렇다면 이것은 당신이 거듭났다는 증거가 된다.
 
 
4. 형제사랑이 있다.
 
●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외에 누구를 어떻게 사랑하게 되는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요일 4:7)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이 내 안에 거하면, 그의 자녀들도 사랑하게 된다.
 
그들의 사회적 지위나 지적 수준 또는 교파에 관계하지 않고,
그들이 흑인이든 백인이든, 가난하거나 부자이든, 교양이 있든 무교육자이든
하나님의 자녀 모두를 사랑하게 된다.
 
인간의 삶에서도 같은 가족구성원끼리 서로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다.
혈연관계가 서로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준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가족들 간에도 어떠한 한계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자녀들 또한 혈연으로 -모든 신자가 공통으로 소유한 그리스도의 피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초대교회 시대에 이교도들이 성도들을 가리켜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저들이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라?“
 
당신에겐 이 형제 사랑이 얼마나 명백히 드러나고 있는가?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7,18)
 
만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를 사랑한다면,
그들의 인격을 옹호하고, 그들의 이익을 도모해주며, 그들의 필요를 돌보며,
또한 그들의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5. 실제적인 의로운 삶이 있다.
 
● 거듭난 사람의 삶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가?
 
나무는 그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 믿음은 그 행위로써 입증된다.
경건한 성품은 자연스럽게 경건한 삶으로 드러난다.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요일 2:29)
 
우리가 거듭났다고 하는 또 하나의 증거는 선(의로운 행위)을 행하는 것이다.
 
거듭나지 못한 자들은 "불순종의 아들들"이라고 불린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존중하는 마음도 없고, 하나님의 권위에 순복하기를 거절하며,
하나님의 영광 보다 그들 자신의 관심사에 마음을 쏟는다.
 
하지만 성령으로 난 사람들은 자신의 "지체를 의의 병기(도구)로“ 드리며,
하나님 말씀의 계명에 조화를 이루면서 자신들의 삶을 빛어간다.
 
그들은 더 이상 그들이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니며, 값으로 산 바 되었음을 깨닫는다.
그들은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 (엡 2:10)가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성령의 열매가 그들 삶 가운데 아름답게 맺히기를 기도한다.
 
또한 요한일서 5장 4절에는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자의 삶은 시대의 풍조나 체계, 처세법 그리고 세상을 추구하면서 사는 것이 아닌,
우리가 주로 고백하는 분의 발자취를 따르도록 우리의 본보기로 남겨 놓으신 그분,
바로 그리스도로 인해 사는 것이다.
 
 
6. 은혜 안에서의 성장이 있다.
 
● 은혜 받은 사람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침체와 부진은 질병과 죽음을 야기한다. 손발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 결국 마비되고 만다.
생명은 성장을 통해 입증된다.
 
그 사실로 인해 우리는 베드로전서 2장 2절의 말씀으로 교훈을 받고 있다.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영혼을 생명의 양식으로 먹이게 될 때,
우리 영성은 발달하게 되고 우리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게 된다.
 
날마다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때,
주님의 능력과 주님의 강력한 권세로 우리는 강해지게 된다.
 
그럴 때 우리 거듭난 자의 삶은 능력에서 능력으로,
영광에서 영광으로 나아가는 삶이 된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잠 4:18)
 
자, 여기에 영적 성장을 측정하는 기준이 있다.
 
- 당신은 그리스도를 더욱 닳아가고 있는가?
- 당신은 과연 주님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이 사실은 당신이 분명 하나님의 자녀로 계수되고 있다는 증거 이다.
 
 
7. 끝날까지 흔들리지 않는 인내하는 믿음이 있다.
 
● 거듭난 자의 믿음은 어떠한 믿음인가?
 
입으로만 신앙 고백하는 자와 참으로 거듭난 신자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곧 기쁨으로 받아드리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 속에는 아직 뿌리가 없어 잠시 동안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게 된다(마13:20,21).
 
이런 사람들은 결코 거듭난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신의 성품이 그들 속에 한 번도 주어진 일이 없기에,
결론적으로 그들 안에는 "뿌리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겉만 씻긴 암퇘지 같아서 곧 자신들이 뒹굴던 흙탕물로 돌아가게 된다.
 
그들과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다.
그들은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한다(시 37:24).
 
그들은 베드로처럼 침륜에 빠질 수도 있지만,
베드로처럼 슬피 통곡하고는 다시 회복된다.
 
거듭난 사람은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된 것이며(벧후 1:4),
하나님께서 영원불변하시기에 그들 또한 결코 멸망치 않는다.
 
이 땅 가운데서의 순례가 끝날 무렵,
모든 거듭난 영혼들이 다소간 차이는 있을지라도, 적어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4:6-8)
 
하나님의 은혜가
그 자녀된 신분에 합당히 살아가는 저자와 독자 모두에게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