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머레이
앤드류 머레이 성령론 3장
주와 복음을 위하여
2017. 1. 14. 18:59
성령 안에서 예배함
(앤드류 머레이 성령론 3장 발췌)
요한복음 4:23~24 (표)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이것은 그분이 성령을 주심으로써 시작된 예배이다.
이제 이것만이 성부를 기쁘시게 하는 예배이다. 우리는 특히 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성령을 받았다.
우리가 품어야 할 복된 생각은, 우리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을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가장 큰 목표로 삼고 계신다는 것이다.
육체가 할 수 있는 능력에 속한 것이어서 육체의 만족이 되는 예배가 있고,
골로새서 2:18~23 (표)
18. 남들이 겸손과 천사 숭배를 주장하면서 여러분을 정죄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런 자는 자기가 본 환상에 도취되어 있고,
육신의 생각으로 까닭 없이 교만을 부립니다.
19. 그는 머리에 붙어 있지 않습니다. .....
20.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세상의 유치한 원리에서 떠났는데,
어찌하여 아직도
이 세상에 속하여 사는 것과 같이 규정에 얽매여 있습니까?
21. "붙잡지도 말아라. 맛보지도 말아라. 만지지도 말아라" 하니, 웬 말입니까?
22. 이런 것들은 다 한때에 쓰다가 없어지는 것으로서,
사람의 규정과 교훈을 따른 것입니다.
23. 이런 것들은
꾸며낸 경건과 겸손과 몸을 학대하는 데 지혜를 나타내 보이지만,
육체의 욕망을 억제하는 데는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으로 하는 예배가 있다.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 새 영을 주시며, 또 그 안에 하나님의 성령을 주심으로써,
우리 안에서 가능하게 해 주시고 실현시켜 주신 예배가 바로 이 예배이다.
영으로 하는 예배가 진리로 하는 예배이다.
"영으로"라고 하신 말씀이 외적인 예식과 대비하여 내면적인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자연적 능력이 해 낼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영이 우리 속에서 사역하심으로써 이루시는 영적인 것을 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진리로"라는 말씀도 진심이나 솔직함, 정직함을 뜻하지 않는다. 구약의 성도들은 모든 예배에서 하나님께서 중심의 진실한 마음을 찾으신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정직하게 전심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았고, 그럼에도 그들은 예수께서 육체를 찢으시고 우리에게 가져다주신, 영과 진리로 하는 예배에 이르지 못했다.
여기서 진리란 하나님에 대한 예배가 내포하는 모든 본질과 실체이며, 그 요구와 약속 안에서 그것을 현실로 소유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사물 자체 즉, 그것들의 본질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말이 뜻하는 바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그분이 어떻게 진리로 충만하셨는지 알 수 있다. 그분 자신이 진리요, 실재요, 생명이요,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이 살아가신 삶과 하나님과 사귀셨던 교제의 방식대로 하나님의 능력을 실재적 존재로서 향유하면서,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 반드시 영으로 예배하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은 성령께서 계시하시고 지속되게 하시는 것이다.
참다운 예배자는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한다.
모든 예배자가 다 참다운 예배자는 아니다. 대단히 진지하고 정직한 예배이지만 영과 진리로 하는 예배가 아닌 경우도 많이 있을 수 있다. 전심을 다하고, 깊은 감동을 느끼고, 의지가 강하게 용솟음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진리에 속한 영적인 예배라고는 거의 말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성경적 진리에 강하게 결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역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노력에서 오는 지배적 행위를 통한 예배가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찾으시는 바, 그리스도께서 주신 예배, 성령이 호흡하시는 예배가 아니다.
우리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 참된 예배자가 되려고 애쓴다면, 우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부지불식 간에 육으로 예배하는 것과 그 결과에 함몰되어 있다는 위기를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는 생명을 얻기 위해서 혹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똑같이 성령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에게 필요한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육은 침묵해야 한다. 모든 육체는 여호와 앞에 잠잠하라.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말라.
성부께서는 이미 베드로에게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계시하셨으나, 그는 십자가를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못했고 사람의 일을 생각했다.
하나님의 일에 대한 우리 자신의 생각, 올바른 감정을 일깨우고 북돋으려는 노력, 예배할 수 있는 우리 자신의 능력, 이 모든 것은 내려 주셔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다가가려면 성령께 확실하고도 잠잠하게 굴복해야만 한다.
지금이 참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할 바로 그때이다.
아버지께서 그런 예배자를 찾으신다는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성령을 주셨고 우리 속에 내주하게 하셨다. 우리는 그것을 이룰 수 있고, 참된 예배자들이 될 수 있다는 확신 가운데 기뻐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곧 성령을 주셨기 때문이다.
거룩한 두려움과 경외심으로, 그분이 우리 속에 거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겸손하게 육체를 잠잠하게 하고 우리 자신을 그분의 인도와 가르침에 맡겨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 가운데 그분이 일하시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예배를 실행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큰 영광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힘을 주시어서, 우리의 속사람이 진정한 영적 성전이 되고, 거기서 영적 희생제사가 쉼 없이 드려져야 한다.
또한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가르치사, 하나님의 임재하심 앞에 나아갈 때마다 자아와 육체는 죽게 내어주는 법을 알게 하시고, 또한 내주하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예배와 믿음과 사랑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시도록 기다리고 맡겨야 한다.
(앤드류 머레이 성령론 3장 발췌)
요한복음 4:23~24 (표)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이것은 그분이 성령을 주심으로써 시작된 예배이다.
이제 이것만이 성부를 기쁘시게 하는 예배이다. 우리는 특히 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성령을 받았다.
우리가 품어야 할 복된 생각은, 우리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을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가장 큰 목표로 삼고 계신다는 것이다.
육체가 할 수 있는 능력에 속한 것이어서 육체의 만족이 되는 예배가 있고,
골로새서 2:18~23 (표)
18. 남들이 겸손과 천사 숭배를 주장하면서 여러분을 정죄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런 자는 자기가 본 환상에 도취되어 있고,
육신의 생각으로 까닭 없이 교만을 부립니다.
19. 그는 머리에 붙어 있지 않습니다. .....
20.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세상의 유치한 원리에서 떠났는데,
어찌하여 아직도
이 세상에 속하여 사는 것과 같이 규정에 얽매여 있습니까?
21. "붙잡지도 말아라. 맛보지도 말아라. 만지지도 말아라" 하니, 웬 말입니까?
22. 이런 것들은 다 한때에 쓰다가 없어지는 것으로서,
사람의 규정과 교훈을 따른 것입니다.
23. 이런 것들은
꾸며낸 경건과 겸손과 몸을 학대하는 데 지혜를 나타내 보이지만,
육체의 욕망을 억제하는 데는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으로 하는 예배가 있다.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 새 영을 주시며, 또 그 안에 하나님의 성령을 주심으로써,
우리 안에서 가능하게 해 주시고 실현시켜 주신 예배가 바로 이 예배이다.
영으로 하는 예배가 진리로 하는 예배이다.
"영으로"라고 하신 말씀이 외적인 예식과 대비하여 내면적인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자연적 능력이 해 낼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영이 우리 속에서 사역하심으로써 이루시는 영적인 것을 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진리로"라는 말씀도 진심이나 솔직함, 정직함을 뜻하지 않는다. 구약의 성도들은 모든 예배에서 하나님께서 중심의 진실한 마음을 찾으신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정직하게 전심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았고, 그럼에도 그들은 예수께서 육체를 찢으시고 우리에게 가져다주신, 영과 진리로 하는 예배에 이르지 못했다.
여기서 진리란 하나님에 대한 예배가 내포하는 모든 본질과 실체이며, 그 요구와 약속 안에서 그것을 현실로 소유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사물 자체 즉, 그것들의 본질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말이 뜻하는 바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그분이 어떻게 진리로 충만하셨는지 알 수 있다. 그분 자신이 진리요, 실재요, 생명이요,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이 살아가신 삶과 하나님과 사귀셨던 교제의 방식대로 하나님의 능력을 실재적 존재로서 향유하면서,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 반드시 영으로 예배하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은 성령께서 계시하시고 지속되게 하시는 것이다.
참다운 예배자는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한다.
모든 예배자가 다 참다운 예배자는 아니다. 대단히 진지하고 정직한 예배이지만 영과 진리로 하는 예배가 아닌 경우도 많이 있을 수 있다. 전심을 다하고, 깊은 감동을 느끼고, 의지가 강하게 용솟음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진리에 속한 영적인 예배라고는 거의 말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성경적 진리에 강하게 결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역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노력에서 오는 지배적 행위를 통한 예배가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찾으시는 바, 그리스도께서 주신 예배, 성령이 호흡하시는 예배가 아니다.
우리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 참된 예배자가 되려고 애쓴다면, 우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부지불식 간에 육으로 예배하는 것과 그 결과에 함몰되어 있다는 위기를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는 생명을 얻기 위해서 혹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똑같이 성령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에게 필요한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육은 침묵해야 한다. 모든 육체는 여호와 앞에 잠잠하라.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말라.
성부께서는 이미 베드로에게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계시하셨으나, 그는 십자가를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못했고 사람의 일을 생각했다.
하나님의 일에 대한 우리 자신의 생각, 올바른 감정을 일깨우고 북돋으려는 노력, 예배할 수 있는 우리 자신의 능력, 이 모든 것은 내려 주셔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다가가려면 성령께 확실하고도 잠잠하게 굴복해야만 한다.
지금이 참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할 바로 그때이다.
아버지께서 그런 예배자를 찾으신다는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성령을 주셨고 우리 속에 내주하게 하셨다. 우리는 그것을 이룰 수 있고, 참된 예배자들이 될 수 있다는 확신 가운데 기뻐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곧 성령을 주셨기 때문이다.
거룩한 두려움과 경외심으로, 그분이 우리 속에 거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겸손하게 육체를 잠잠하게 하고 우리 자신을 그분의 인도와 가르침에 맡겨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 가운데 그분이 일하시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예배를 실행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큰 영광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힘을 주시어서, 우리의 속사람이 진정한 영적 성전이 되고, 거기서 영적 희생제사가 쉼 없이 드려져야 한다.
또한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가르치사, 하나님의 임재하심 앞에 나아갈 때마다 자아와 육체는 죽게 내어주는 법을 알게 하시고, 또한 내주하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예배와 믿음과 사랑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시도록 기다리고 맡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