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머레이

앤드류 머레이 성령론 4장

주와 복음을 위하여 2017. 1. 14. 19:04
성령과 말씀
(앤드류 머레이 성령론 4장 발췌)
 
 
 
찬양 받으실 우리 주님께서는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고, 자기의 살과 피는 영생의 양식과 음료라고 가르치셨다!!

요한복음 6:53~56 (공)
53. 예수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만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 생명을 간직하지 못할 것이다.

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며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

요한복음 6:63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63.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다.
육은 아무 데도 소용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그 말은 영이요, 생명이다.
 
KJV
It is the spirit that quickeneth;
the flesh profiteth nothing:
the words that I speak unto you,
they are spirit, and they are life.
 
고전 15:45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5. 성경에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고 기록한 바와 같이,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KJV
And so it is written,
The first man Adam was made a living soul;
the last Adam was made a quickening spirit.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 성령은 자연의 영역에서나 은총의 영역에서나 생명을 부여하는 제일원리로서 언제나 먼저 행동하신다. 이것을 붙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인치심, 거룩하게 하심, 조명하심과 강건하게 하심 등 그분이 신자 속에서 하시는 사역은 여기에 그 뿌리를 박고 있다.
 
그분을 알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며, 그분께 자리를 내어드리고, 그분을 내 영혼의 내적생명으로 바라고 기다릴 때 그분의 은혜의 사역을 체험할 수 있다. 이러한 은혜의 사역들은 내적생명이신 성령의 당연한 결과물이며, 우리는 성령의 생명의 능력 안에서 그것들을 향유할 수 있다.
 
● "살리는 것은 영이니" 주님께서는 육을 영에 대조하셨다. "육은 무익하니라"
 
이때, 그분께서는 죄악의 근본이 되는 인간의 육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육이란 자연 상태의 사람이나 혹은 신자라 할지라도 성령께 맡기지 못하는 자가,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거나 또는 거룩한 것을 알고자 하며 소유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인간적인 노력과 능력들을 말한다. 
 
육의 이러한 모든 노력과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성격상 헛된 것일 수밖에 없음을 주님께서는 이렇게 지적하신다. "무익하니라", 육은 우리가 영적 실재, 즉 거룩한 것 그 자체에 도달하는 데 쓸모가 없다.
 
바울이 죽이는 율법 조문과 영을 대조한 것도 같은 의미였다. 율법 시대 전체는 바로 율법 조문과 육의 시대였다. 그 시대는 분명히 영화로운 한 시대였으며, 이스라엘이 가진 특권은 매우 큰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바울이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라고 말한 것과 같다.
 
고린도후서 3:6~11 (표)
 
6.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언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새 언약은 문자로 된 것이 아니라, 영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지만,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
 
7. 돌판에다가 문자로 새긴 율법을 선포할 때에도, 빛이 났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은,
비록 곧 사라질 광채이기는 하지만,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그 광채 때문에,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직분에도 이러한 영광이 따랐는데,
 
8. 하물며 성령의 직분에는, 더욱더 영광이 넘치지 않겠습니까?
 
9. 정죄를 선고하는 직분에도 영광이 있었으니,
의의 직분은 더욱더 영광이 넘칠 것입니다.
 
10. 참으로 이 경우에 이제까지 영광으로 빛나던 것이,
이제 훨씬 더 빛나는 영광이 나타났으므로,
그 빛을 잃게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11. 잠시 있다가 사라져 버릴 것도 영광을 입었으면,
길이 남을 것은 더욱 영광 속에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그 육신을 찢으심으로써 육의 시대가 가고 그 대신 성령의 시대가 오기까지, 육체로 계신 동안에는 말씀으로써 제자들을 원하시던 모습으로 만들지 못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주님은 자신이 방금 말씀하셨던 말씀과 거기에 포함된 영적 진리를 가리켜 특별히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 첫째, 그분의 말씀은 정말로 능력을 가진 살아있는 씨앗이다.
 
그러므로 그분 말씀을 받아 마음에 품는 사람들 속에 그 능력은 싹트고 돋아나, 그 생명력을 확증하고 그 뜻을 드러내며, 거룩한 능력을 입증한다. (참고: 번역본에서는 '그 능력', '그 생명력'이라고 했는데, "그"를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라 번역해도 무난할 것 같다.)
 
그분의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다. 그 말씀은 이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위한 것이다.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높고 깊은 성령의 권능이 임하면, 말씀은 생명의 근원적 요소가 된다.
말씀 스스로가 하나님의 활동력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진리를 이루는 거룩한 생명을 지니며, 그 진리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체험 속으로 드러난다.
 
● 둘째, 이처럼 주님의 말씀은 자신을 받아줄 영적 본성이 필요하다.
 
씨앗은 적합한 토양을 필요로 한다. 씨앗에도 생명이 있는 것처럼 토양에도 생명이 있어야 한다.
말씀은 생각이나 감정 혹은 의지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하여 생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생명의 중심은 사람의 영적 본성이며, 영적 본성의 음성은 양심이다. 말씀의 권위가 그곳에서 인정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양심은 통제할 수 없는 세력들에 에워싸인 포로로서 사람 속에 거하고 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새 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께로부터 오시는 분,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분이신 성령께서 우리의 생명이 되시며, 또한 성령께서 그분의 말씀을 받아서 우리의 생명으로 동화시키면서, 우리들 속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진리와 능력이 되게 하실 것이다.
 
이와 같은 성령과 말씀의 관계를 주의하고 굳세게 붙들어야 한다. 이 진리가 말씀 없이 성령의 가르치심을 맛보거나, 성령 없이 말씀의 가르침을 터득할 수 있으리라는 망상을 갖지 않게 할 것이다.
 
 
우리는 우로 치우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데, 이는 말씀은 없이 성령의 가르침만을 구하는 것이다.
 
성삼위일체에 있어서 말씀과 성령은 언제나 서로의 안에 계시며, 성부와 하나가 되신다. 성령은 모든 시대마다 하나님의 생각을 기록된 말씀으로 나타내셨고, 바로 그 목적으로 우리 마음에 지금도 살아 계시며, 거기서 말씀의 능력과 뜻을 계시하신다.
 
당신이 성령으로 충만하고자 한다면, 말씀으로 충만해져야 한다.
 
성령의 거룩한 생명이 당신 안에서 강건하게 자라나고, 당신 본성의 모든 부분에서 성령의 능력을 획득하기 원한다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당신 안에 풍성하게 거하도록 하여야 한다.
 
영원한 말씀을 당신의 빛으로 삼고자 한다면, 기록된 말씀을 성령께서 당신의 마음에 옮겨 적으시도록 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말씀을 취하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살리시는 권능을 행사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좌로 치우치는 어리석음을 더 자주 범하는데, 이는 성령의 가르침 없이 말씀을 이해하려는 것이다.
 
● 사람들은 성경 말씀의 의미를 바르고 정확하게 알기만 하면 그 자연적 결과로서 말씀이 가져다주시고자 하는 복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말씀은 씨앗이다. 씨앗이 적합한 토양 속에서 햇볕과 물에 접촉하지 않으면 그 생명은 자라날 수 없다.
 
우리가 성경의 말씀과 교리를 매우 지적이고도 진지하게 파악하면서도 그 생명과 능력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교회에 깨우쳐야 할 것은, 옛 시대에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거룩한 사람들이 대언한 성경말씀은 오직 바로 그 동일한 성령의 가르침을 받는 거룩한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말씀의 생명을 받아서 당신의 내적 생명에 적합하게 하시기까지는, 말씀이 당신 안에서 그 생명을 펼쳐 보이시리라고 행여 한 순간이라도 생각하지 말라.
 
● 그리스도 당시 유대교의 선생이었던 니고데모와 같은 자들도, 그들의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의 영의 조명과 능력으로써 성경을 연구하지 않고, 인간적 이해의 관점과 능력으로써 성경을 연구했고 받아들였다.
 
그들은 참으로 성경이 그들을 영생으로 이끌 줄 믿었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의 능력 속에 살아계셔서 그들의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한다. 그들은 성경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언하는 것은 보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에게 오려고 하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이같은 그들을 책망하며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5:39~40
39. 너희는 성서 속에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알고 파고들거니와
그 성서는 바로 나를 증언하고 있다.
 
40.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이와같이 성경을 읽고 많이 아는 신자들이 삶에 연약한 것은, 인간적 이해력이 아무리 총명하고 진지한 것이라 해도 그것은 무익하며, 살리는 분은 성령이심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의 능력 속에 살아계셔서 그들의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한다.
 
 
필요한 것은 아주 단순하다. 즉 살리시는 성령이 없이 기록된 말씀을 다루려고 하는 시도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것이다.
 
성령에 대한 필요성과 약속을 깨닫지 못하고서 절대로 성경을 우리 손이나 정신 혹은 입으로 취하지 말아야 한다.
 
① 먼저 당신 안에 성령의 역사를 주시고 새롭게 해 주시도록, 조용히 예배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② 그리고 나서, 정신만이 아니라 당신 안의 생명이 열려서 말씀을 받아들이도록, 조용히 믿음 가운데 당신 자신을 당신 안에 거하는 성령의 능력에 맡기고 그분을 기다려야 한다.
 
③ 성령으로 하여금 당신의 생명이 되시게 하라.
 
그리스도의 말씀은 참으로 영이요 생명이다. 밖에서 들어오는 양식인 말씀을 맞이하러 안에서 나아오는 영과 생명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은 참된 영과 생명이 된다. 
 
주님의 가르치심을 따라 성령에게로 나아갈 때, 주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인 것과 마찬가지로, 성령은 우리의 생명의 영으로 우리들 속에 반드시 거하신다는 것이 더욱 분명해질 것이며, 하나님의 영은 반드시 우리의 깊은 개인적 생명이 되실 것이다.
 
 
맺음말
 
에스겔 36:26~27
26. 너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고
너희 속에 새로운 영을 넣어 주며,
너희 몸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며,
 
27. 너희 속에 내 영을 두어,
너희가 나의 모든 율례대로 행동하게 하겠다.
그러면 너희가 내 모든 규례를 지키고
실천할 것이다.
 
KJV
26. A new heart also will I give you,
and a new spirit will I put within you:
and I will take away the stony heart out of your flesh,
and I will give you an heart of flesh.
 
27. And I will put my spirit within you,
and cause you to walk in my statutes,
and ye shall keep my judgments,
and do them.
 
● 생각과 감정 혹은 의지보다 더 깊은 곳, 이 모든 것들의 근원이며 이 모든 것들에게 변화를 일으키거나 작용하는 직접적인 원인인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영이 반드시 계실 것이다.
 
우리가 이보다 더욱 깊이 찾아 들어가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생명의 영에 비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 우리들 속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 숨겨진 생명 안에 계신 성령께서, 그분의 살리시는 능력으로, 말씀을 받아서 계시하시고 그 말씀을 우리의 생명으로 만들어 주시기를 기다린다면, 우리는 살리는 것은 영이라고 말씀하신 의미를 진정으로 알게 될 것이다.

● 또한 영이요 생명이신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우리의 생명이며 영이신 성령을 만나야 한다는 것과, 그렇게 만날 때에야 비로소 말씀이 그 의미를 보여주고 그 본질을 나누어 주며, 그 거룩한 능력과 충만함을 우리 안에 있는 영에게 넘겨준다는 것이 얼마나 바르고 적절한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 성령께서 이렇게 내 안의 거룩한 생명을 성장하게 하시는 생명력이요 능력이시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데까지 우리를 성장할 수 있게 하시는 보증이 되심을 믿을 때,
 
내 안에 계신 생명의 영이신 성령께서, 어떻게 내 영으로 하여금 생명의 떡이신 말씀에 주리게 하실 것인지 또 말씀을 받아 변화시키셔서 참으로 생명과 능력으로 만드실 것인지 이해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일이 왜 이렇게 자주 일어나는가?
 
그것은 성령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진리를 붙잡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음 두 가지를 믿도록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여야 한다.
 
○ 말씀은 거룩한 영과 능력으로 충만하며, 강하게 역사할 수 있다.
○ 마찬가지로 마음도 거룩한 영을 가지고 있어서,
   성령을 통하여 살아있는 말씀이 살아있는 능력 안으로 받아들여진다.
   생명은 성령의 능력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