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선지자

인과율은 복음이 아니다

주와 복음을 위하여 2016. 9. 22. 15:00

'인과율은 복음이 아니다'


'기독교는 인과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다'


“왜 착한 사람이 고난을 당해야 하는가?” 

“예수 잘 믿으면 복 받고 잘 산다고 해서 믿었는데 예수 믿고 났더니 오히려 일이 더 잘 안 풀리고 행복 끝 고생 시작이 되었다" 


이런 경험들 없으세요? 


욥기는 구원을 얻은 의인들은 인생을 통해서, 신앙생활을 통해서, 고난을 통해서 자신들이 받아 가지고 있는 그 선물이 어떤 것인지를 확인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완성이 되고야 만다는 것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은 반드시 인과율에 의해서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진리도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또 아울러서 올바른 신정론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책입니다. 


그러니까 참 지혜, 하나님의 지혜 앞에서의 인간의 지혜의 보잘 것 없음이 잘 나타나 있는 책인 것입니다. 욥기는 이렇게 단순히 고난의 문제에 관해서 기록되어 있는 책이 아니라 복음이 적혀 있는 책입니다.


그것을 지금부터 하나하나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욥기 1장에 보면 욥이 고난을 당하는 이유가 나옵니다. ~ (욥1:8-12) ~ 욥이 왜 고난을 당합니까? 사단이 참소해서? 사단이 왜 참소 했습니까? 하나님이 욥의 의로움을 자랑하시니까? 그럼 결론적으로 욥은 왜 고난을 당하게 된 것입니까? 의로워서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고난은 하나님 앞에 죄 지은 사람들이 당하는 형벌이라고 생각들을 합니다. 그래서 누가 조금 어려움을 겪으면 은연중에 “저 사람이 하나님 앞에 무슨 죄를 지어서 저런 벌을 받는 걸 거야”라고 생각들 합니다. 그것을 인과율이라고 하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보시다시피 욥은 의인이라서 고난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거두절미하고 처음부터 무죄한 자, 순전한 자로 묘사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아브라함? 바울? 아브라함은 우상을 섬기던 자였고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 때려죽이러 다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 누구지요? 아담입니다. 그가 죄를 짓기 전에는 아담은 왕이요, 제사장이요, 선지자로 에덴을 지키도록 명령을 받은 무죄한 자였습니다. 그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다스리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


욥을 보세요. 그는 동방의 가장 큰 자였습니다. 왕입니다. 그는 자식들을 위해 번제를 드렸습니다. 제사장입니다. 그리고 가축과 재산과 자식이 어마어마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요구하신 것을 그대로 이루어 내고 있는 모습이지요? 창조의 완성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 것들이 하나하나 파괴됩니다 ~ (욥1:13-19) ~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통해서 우리 안에 주어진 그 금보다 귀한 은혜의 실체를 하나하나 껍질 벗기듯 벗겨가며 알아 가는 것입니다. 


보세요. 

욥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도 무엇을 근거로 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을 말합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하시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도 ”나는 무죄입니다“를 근거로 이야기를 해 나갑니다. 그 말은 욥은 의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인의 삶이 인과율에 의해서 결정지어지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저는 죄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하나님께 항의하는 것입니다” 

왜 원인이 없는 이런 고난이라는 결과가 있는 것입니까?욥은 내내 그것으로 고민합니다. 


그것은 절대 복음이 아닙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것은 세상의 논리입니다. 

사단은 늘 그 인과율로 복음을 희석시켜왔습니다. 


욥기 1장에서 사탄이 어떻게 참소를 합니까? ~ (욥1:8-10) ~“하나님께서 돈도 주고 명예도 주고 자식들도 많이 주었으니까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아닙니까? 한번 다 빼앗아 보세요. 그래도 그가 의인이 되는가?” 사단이 그렇게 참소합니다. 


그게 인과율입니다. 

“원인이 있으니까 결과가 있는 것 아닙니까?“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창세기 3장 15절의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도전인 것입니다. 

“인간은 좋은 것으로 채워주지 않으면 절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의로운 자를 만들어 내시더라.“ 이것이 욥기입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그 은혜를 살짝 가리고 인과율에 의한 거짓 복음을 세상에 뿌려 놓았습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기독교가 인과율에 의한 종교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내가 믿어줬으니 내게 좋은 것으로 주세요.“”내가 착하게 살 테니 , 열심히 금식 기도 할 테니, 열심히 봉사 할 테니 좋은 것으로 보상해 주세요.“ 이게 인과율에 의한 종교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을 보상으로 준다고 가르칩니다.

 

실제로 인과율에 의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내가 믿었고 내가 착하게 살았고 내가 회개해서 구원을 얻었다, 그리고 내가 믿어 주었으니 하나님은 나에게 이러 저러한 보상을 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삼박자 축복이니 뭐니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지요? 그들이 좋아하는 돈, 건강 다 빼앗아 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금방 사단의 참소대로 “어떻게 나한테 이러실 수 있습니까?”로 갑니다. 


그러나 진짜들은 어떻게 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하나님만으로 만족합니다.”로 갑니다. 하나님은 사단의 참소를 묵사발로 만들어 버리시고 그 최악의 고난 속에 던져진 욥에게서 그 고백을 받아내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열심히 고스란히 나타나 있는 책이 욥기입니다.

 

(합3:17-18)17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욥은 42장에서 바로 이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서 하나님은 반드시 이 고백을 받아 내시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짜들은 그러한 시험에서 다 떨어져 나갑니다. 인과율은 복음과 완전히 상반되는 것입니다. “인과율은 복음이 아니다 욥기는 전부 그 이야기의 반복입니다. 욥의 친구 빌닷의 논리를 한번 보세요 ~ (욥8:1-7) ~ 욥의 친구 빌닷이 욥을 책망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고 청결하고 정직하면, 네가 형통하고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하고 멋있게 충고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정말 이렇게 살 수 있으세요? 이런 삶이되던가요? 안 되지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멸망이리라“ 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가 아니면 사망으로밖에 갈 수가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구원은 그렇게 은혜로 받고 자기 삶 속에서는 인과율에 의해서 복을 받겠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어찌 삼박자 축복이라는 것이 나올 수가 있습니까? 

그건 성도들을 속이는 사단의속임수입니다. 

엘리바스의 논리도 역시 인과율에 의한 논리입니다. (욥4:1-8) 죄 없는 사람은 절대 고난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인과율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8절을 보시면 내가 본 바로는, 악을 갈아 재난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더라. 라고 하지요? 그의 논리의 근거가 뭡니까? “내가 본 바로는” 즉 “자기의 이 땅에서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라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은 그렇게 이 땅의 경험이나 체험으로 추측하고, 미루어 짐작하고, 정의 내리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상식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제한하는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이런 체험도 합니다. 이른바 직통 계시, 성령 체험 같은 것을 경험합니다. ~ (욥4:12-21) ~ 굉장히 옳은 말 같고 엄청난 체험을 한 것 같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이러한 논리나 체험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욥42:7-8) ~“너희들 말은 틀렸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은 그렇게 이 땅의 것으로 보여 지고 이 땅의 것으로 상을 받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 (욥5:23-27) ~ 엘리바스가 욥에게 뭐라고 충고합니까? “너 하나님 말씀대로 죄 안 짓고 잘 살면 하나님께서 이 땅의 것들로 보상해 주신다.” 그럽니다.

 

그러니까 기독교를 사람을 중심에 놓고 이 땅의 것으로 보상을 약속하는 사람들은 전부 적그리스도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중심에 계시고 하늘의 것으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법칙이요 원리인 인과율에 의해서가 아닌 원인이 없는 곳에서 결과를 만들어 내시는 하나님의 지혜로 구원을 완성해 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생활도 바로 그 은혜의 원리에 의해 이끌려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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