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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도서

나를 허물고 주님을 세우는 삶(The Believer's Secret of the Master's Indwelling) / 앤드류 머레이

나를 허물고 주님을 세우는 삶(The Believer's Secret of the Master's Indwelling) / 앤드류 머레이

 

1.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

 

고전 3:1에 그리스도인의 두 유형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자들과 육신에 속한 자 입니다.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신령한 양식을 공급한다면, 이는 그들을 이롭게 하기보다 오히려 해를 끼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두 부류의 그리스도인이 존재합니다.

 

육신의 상태가 무엇인가?

첫째, 유아기가 너무 오래 지속된 상태입니다. 나약한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 속에는 하나님의 영의 거룩함과 능력의 아름다움이 없습니다. 자립할 수 없습니다. 항상 도움 받기만을 원합니다. 바로 이것이 영적인 유아의 표시입니다.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없습니다.

 

둘째, 죄와 실패가 끊이지 않는다. 자기의 기질을 잘 다스리지 못합니다. 기질의 뿌리와 싸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육신에 속해 있고 하나님의 영에 올바로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신에게 죄의 뿌리가 완전히 근절될 것이라든지, 혹은 타고난 죄의 본성이 모두 제거될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능력으로 우리에게 임하실 때, 그분의 신령한 은혜로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런 후에 우리는 비로소 죄를 이기고 육신의 정욕에서 벗어날 능력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어떤 은사를 주셨을 지라도 실제 우리 삶은 성령님의 능력 가운데 전적으로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은혜는 사람을 자아에서 해방시키지만, 성령님의 은사는 사람을 일하기에 적합하게 만듭니다. 나는 복음을 전하는 목사일 수도 있습니다. 실상은 육신에 속한 삶을 사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넷째, 신령한 진리들을 받아들이는데 무능력합니다.

신령한 자의 특징이 죄에 빠진 자들을 돕고 바로잡을 수 있는 온유함, 능력 그리고 사랑입니다.

 

어떻게 신령한 삶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첫째, 땅에서 구현해야 할 신령한 삶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포도주를 마시면 취하지 않을 수 없듯이, 성령님으로 충만하지 않고는 결코 신령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신령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으라."

 

둘째, 살지 못했다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죄스럽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두번째 자각이 필요합니다. 육신의 정욕이 자기의 온 몸과 마음을 완전히 장악하여 비참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자기의 불신 때문에 하나님의 영이 주시는 온전한 선물을 받지 못했습니다. 욥은 심각한 자기의의 죄를 보게 되었습니다.

 

셋째는 단지 한 걸음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회심도 오직 한 걸음 뿐이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에 자기 육체를 드릴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을 간절히 구하게 될 때, 필요한 것은 오직 한 걸음 뿐입니다. 신령한 삶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가 강한 어른으로 자라나는 것처럼 성장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육신에 속한 고린도 교인들을 도울 수 있었습니까?

의사의 수술칼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능력을 받아들이는 이 단순한 믿음의 행동이 우리를 구원해 줄 것입니다. 자기 앞에 계신 전능하신 구주를 바라보고 그 품속에 자신을 모두 던졌습니다. 살아계신 그리스도가 거룩하고 신령한 삶을 위해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양식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넷째, 반드시 한 걸음을 떼야 합니다. 그분의 영에 당신 자신을 완전히 바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과 통치에 마음을 다 바쳐 온전히 순종하지 않으면서도 그분이 자기들의 못된 기질이나 여러가지 다른 죄들을 제거하는데 힘을 기울여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영을 충만히 채워주시기 위해 당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겸손한 순종과 어린아이 같은 믿음 안에 거한다면, 축복도 틀림없이 임할 것입니다.

2. 자아의 삶

왜 그토록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의 나타남과 특권과 영광으로 살지 않고 두렵게도 세상과 손을 잡고 살아가는 것으로써 인생을 낭비하는 것일까? 자아가 모든 문제의 뿌리입니다. 새로운 삶, 그리스도의 삶이 당신의 삶을 대신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만 당신은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영께서 이 진리를 베드로에게 계시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에 속한 자가 베드로 안에 얼마나 강하게 남아 있었는지 보십시오. 내가 십자가에 못박혀야 할 뿐 아니라 너희도 또한 그러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아는 창조받은 존재의 핵심입니다. 자아를 빈그릇의 상태로 그분께 가지고 나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 의지하는 자아는 창조주가 우리 안에 자신을 계시하시도록 허락하는 영광이 됩니다. 사단은 선악을 분별하고 자존하는 자아를 지니신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고 하와를 유혹했습니다. 저주받을 자아를 완전히 깨닫고, 미워하고 포기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자기본위.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은 인간의 큰 죄악입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행하면 안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뜻만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을 기쁘게 했기 때문입니다. 저주받을 자아와 예수님 사이의 선택이었습니다. 스스로 기쁘게 하는 매순간, 당신은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자기과신. 자기신뢰, 자기노력, 자기의존에도 빠지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실패하는 것은 스스로를 과신하기 때문입니다. 자만. 사람들의 찬사를 얼마나 열망하고 살고 있는지요! 서로 영광을 취한다면 믿음의 삶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너는 나를 너의 존재 규범, 행동 법칙으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네 전심을 내게 바쳐야 한다. 나를 따르라. 그러면 내가 너의 모든 것을 권고해 줄 것이다." "제가 제 삶을 부인합니다. 저는 당신의 삶을 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신자들이 그리스도 중심의 삶이 자신들에게 나타나기를 계속 간구하면서도 아무런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자아의 삶을 부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만이 자아의 삶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신령한 은혜로써 자아의 권세가 세력을 떨치거나 우세하게 되지 못하도록 막으실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한 때는 성령님께서 능력으로 임하시기 전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아직 육신에 속한 자, 즉 열의는 있지만 이길 힘이 없는 상태에 있었고 나약한 육체에 불과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참예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매시간, 매순간 끊임없이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죄없는 자아였지만, 그래도 분명히 자아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바로 이것을 죽음에 내어주셨습니다. 먼저 할 일은 자아가 모든 죄, 모든 부족, 모든 실패,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혀왔던 모든 것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먼저 자기를 부인하고 미워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이 자아가 우리를 후퇴시켜 온 장애물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옵소서."

 

3.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당신은 가장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이 주변의 어떤 일보다 당신에게 더 가까우며 그 존재가 확실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살아갈 수 있게 되어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들의 하나님을 모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다리지 않고 인간의 본성을 발현하는 기타의 노력들에 더 마음을 쏟고 있습니다. 성경도 하나님을 가리키는 지시봉일 뿐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기 위해 돌아가셨다는 성경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와 배려와 긍휼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에 만족하고 여기에만 머무를 위험이 있습니다. 먼저 필요한 일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와 근원과 힘이 되시기 위해 존재하십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기회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감히 그분의 영에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과 제게 요구하시는 수준입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기도드릴 때 하나님 앞에서 입을 다물고 잠잠히 기다리는 데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기도는 진실로 하나님을 잠잠히 바라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하나님을 바라지 않는 기도도 많이 있습니다. 듣고 배우는 데 온통 마음이 사로잡혀 하나님의 임재를 잊어버리는 잘못을 범하지 않기를 진실로 바라게 될 것입니다. 모세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인도했습니다. 우리는 예배에서 하나님을 바라야 합니다. 골방에서 잠잠히 하나님을 기다리면서 기도를 올립시다. 신앙이란 실로 당신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4. 안식에 들어감

첫 번째 단계로 나는 진심으로 믿음의 삶 속에 안식이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고 말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회심하는 순간 그들을 구출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축복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막무가내로 거부합니다. 가나안에서 온전한 안식을 누렸습니다. 가나안에서의 삶은 풍요의 삶이었습니다. 승리에 승리를 거듭했습니다. 넉넉히 이기느니라(8:37).

 

두번째 단계로 나는 아직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구원으로 더 깊이 나아가는 단계마다 당신에게는 반드시 굳은 믿음과 자백이 있어야 합니다.

 

세번째 단계로 이러한 삶을 준비해 두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하기를 바랍니다. 자아로부터 고개를 돌려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은 나를 인도하시기 위해 구출하셨습니다.

 

네번째 단계로는 내 노력으로는 결코 이것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 그들이 믿을 수 없는지 자아가 그 원인입니다. 당신이 포기해야 할 분량은 아주 많습니다. 당신은 과거의 모든 신앙생활과 경험과 성공을 단념해야 합니다. 복음 사역자들이 자신의 모든 지혜를 포기하고 이를 예수님의 발 아래 내려 놓은채 빈 마음으로 "주님, 저는 마땅히 알아야 할바 대로 제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복음을 전해 왔지만 실은 저 복된 땅과 저 복된 삶의 영광을 깨닫는 데 얼마나 미약했는지요!"라고 자백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요! 왜 성령께서 우리를 더 효과적으로 가르치실 수 없습니까? 사람의 지혜가 이것을 막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값비싼 진주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나의 모든 시간, 관심, . 나는 하나님의 안식을 인생의 첫째 자리에 놓고 다른 모든 일은 부차적으로 생각한다. 나는 하나님과 온전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바친다." 값비싼 진주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제 마음 속에 악이 여전히 버티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섯째 단계는 하나님께 나 자신을 바칩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안식을 바라지만, 나는 너희를 바란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우리에게 당신을 주시기를 열망하십니다. 지금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왔습니다. 오늘 새롭게 출발하지 않겠습니까? 그 예수님이 당신에게는 여호수아입니다.

 

5. 먼저 그의 나라를!

그리스도인의 삶과 일 사이에는 통일성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신자들의 삶과 일반 세상에서 행하는 일을 서로 조화롭게 맺어주는 통일의 끈은 어디에 있습니까? 왜 하나님의 나라를 첫번째 자리에 놓아야 합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전심으로 하나님이 행복의 근원이시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그들은 자기들과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는 모든 일들을 아주 손쉽게 포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짐, 부담스러운 어떤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구하는 것은 가장 고귀한 특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완전한 의와 거룩하심을 닮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의 나라를 우리에게 물려주셨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바로 깨닫기만 한다면, 이것처럼 우리 마음을 열광케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나의 모든 삶과 존재의 첫자리에 놓여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그 해답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얻고 싶다면 모든 것을 포기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매일 매순간 첫자리에 놓여야 합니다. 매일 아침 그의 나라를 첫자리에 놓으십시오. 오직 성령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은혜는 언제나 능력의 은사보다 더 중요합니다.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첫자리에 두고 싶다면, 당신은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품어야 합니다. 뿌리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그의 나라와 그의 영광에 완전히 바치셨다는 사실입니다.

 

6.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

"어떻게 해야 하나님 안에서 온전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그러한 삶을 사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깨닫기를 바랍니다. 절대적인 의존, 절대적인 신뢰, 그리고 절대적인 순종의 삶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탄생, 지상에서의 삶,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 그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 의존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하나님께 바치셨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죽음에서 일어나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영광의 삶을 살고 계십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그분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는 신령한 생명을 우리 안에 주셨습니다. 나의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오직 그분만 이것을 유지시켜 주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로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믿음의 능력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셔야 합니다. 모든 자만을 꺾고 그리스도처럼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그리고 끊임없이 의뢰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 안에 계시면서 자신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그러한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는 뜻입니다.

 

세 번째는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행하신 저 복된 대속과 피흘림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분 안에서 그리고 그분과 함께 내가 죽어야 하는 바로 나의 대표자십니다. 죽음으로써, 자신이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쓰실 수 있는 그러한 삶을 소유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입증하셨습니다. 온전한 그리스도란 나는 오직 하나님만 영광을 받으실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죽음에 바쳤다. 나는 어떤 의향도 어떤 바람도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말씀하셨던 분입니다. 그분이 당신을 어디까지 인도하실 수 있는지 그리고 그분이 당신 안에서 무엇을 행하실 수 있는지 가르쳐 주시도록 마음의 문을 여십시오. 당신을 전부 맡기고 당신 자신은 포기하십시오. 하나님의 생명은 오직 죽음 속에서만 나오며,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소생시키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매일 십자가를 바라보며 사셨습니다. 우리는 매일 예수님의 죽음에 뿌리를 내리며 살아야 합니다.

 

네 번째로 하나님께서 당신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홍해를 건너게 하신 것과 똑같이, 당신은 또한 하나님께서 요단 강을 건너게 하시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는 바로 그 지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다섯 번째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임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실 것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안에 거하시는 것과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교에 참예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겸손과 참회와 수치의 무덤으로 내려갈 때까지, 그리스도의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진토에 엎드리고 그분이 자기를 일으키실 때 새롭고 놀라우며 초자연적인 일을 이루어 주시기를 바랄 때까지 그리스도와 함께 죽기 전까지, 우리는 이것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7. 우리의 구원이신 그리스도의 겸손

우리들의 인간 관계에서 서로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할 단순하고도 명백한 소명에 관한 내용입니다. 겸손은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신 구원입니다. 그분의 삶 전체는 겸손으로 특징지울 수 있습니다. 종의 형체를 취하여 오셨습니다. 죄인의 신분을 취하셨습니다. 신령한 겸손,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어린 양은 (1) 희생, (2) 하나님의 온유하심을 뜻합니다. 겸손으로부터 흘러나온 구원일 뿐만 아니라 겸손으로 인도하는 구원입니다. 모든 인간이 비참에 떨어진 이유는 자만 때문이었습니다. 자만과 우리의 자기 의지로부터 구원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구원받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인간은 자기를 높이고, 자기의 견해나 판단을 마음대로 내세울 권리를 주장합니다. 오직 겸손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가득 채우려면 자아를 완전히 비워야 합니다.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맡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만의 모든 구렁텅이에서 건져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마음 속에 들어와서 당신의 마음을 소유하시도록 오늘 용기를 내십시오. 그분의 겸손은 나의 생명이며 나의 구원입니다.

 

8. 온전한 순종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주로 받아들이면서도 매사에 철저하고 완전하게 순종하는 데는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첫째 순종의 동기입니다. 예수님의 집이 되어야 할 당신의 마음이 번번이 죄와 어두움과 비탄과 고민으로 가득 차지는 않았습니까? 그분을 모든 일의 주관자로 받아들일 것을 탄원합니다. 당신은 그분의 집입니다.

 

두 번째로 순종의 정도입니다. 모든 소유라는 말이 언급되었습니다. 당신은 마음을 주님께 바쳤습니다. 머리, 생각을 하는 두뇌도 바쳐야 합니다.

 

세 번째 순종의 축복입니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께 나와서 모든 것을 의뢰한다면, 하나님의 축복이 당신의 모든 소유에 미칠 것입니다. 나의 생애가 그분의 손 안에 있으므로 나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만족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외에 그 무엇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무한정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예수님 외에는 그 무엇도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속적인 순종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잠시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기 자신을 완전히 포기한 사람입니다. 모든 유혹이 당신을 축복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자기들의 의무라는 사실을 깨달은 적이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마음 전체를 얼마나 완벽하게 소유하실 수 있는지 보여주심으로써 당신 속에서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9.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

어떻게 해야 자아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가르칩니다. 죄에 대하여 죽으셨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처럼 죄를 위하여 죽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처럼 죄에 대하여 죽을 수 있고 또 죽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기를 배워야 한다고 말하기 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인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적합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와 생생한 연합을 이룬 덕분에, 당신의 새로운 본성은 실제적이고도 철저하게 죄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우리는 진실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이루어 주신 죽음과 생명을 갖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바로 인식하고 깨닫는 일이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첫걸음입니다.

 

두 번째로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죄의 경향이 뿌리째 뽑힌다는 뜻이 아닙니다. 죽음의 능력이 죄로부터 사람을 떼어 놓는다는 의미입니다. 성장이 필요하냐고 묻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모든 영역에는 상당한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능력을 깨달은 후에 자기 자신을 완전히 맡기고 기도해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의 특징은 첫째 절대적인 겸손입니다. 또 다른 특징은 무력함입니다.

 

셋째 안식입니다. 무덤처럼 쉬기 좋은 장소도 없을 것입니다. 어디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극명하게 볼 수 있습니까? 바로 무덤에서 입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은 자기 속의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의 저주가 임한다는 사실을 믿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교회가 다른 무엇보다도 지성, 명철, 문화, 그리고 지적 교양에 의존함으로써 더 많은 고통을 겪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영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고, 그리하여 사람들은 자기들의 지혜와 지식으로 복음을 거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복음에서 그 십자가형의 자국을 지우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바울에게 가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하되 그것을 사람의 지혜로 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아이의 사랑도 죽음에 내려가야 합니다. 당신의 삶을 죽음에 내려 보내십시오. 소생시키고 거룩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날 온 인류 가운데 그리스도께 기도를 드렸던 사람은 오직 그 하나뿐이었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의 친교, 안식, 즉각적인 축복의 약속입니다. 당신이 모든 것을 다 알 필요는 없습니다. 그의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그리스도를 신뢰했습니다. 저는 주님의 죽음에 완전히 들어가기를 소원합니다. 저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싶습니다.

10. 성령 안에서 누리는 기쁨

의는 성부의 사역입니다. 성자의 사역은 우리의 평강입니다.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이러한 기쁨이 우리가 주장해야 할 축복입니다. 신령한 일들을 보고 있지만 그것들에 다가갈 수 없습니다. 자아의 삶이라는 보이지 않는 판유리가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기쁨입니다. 아무도 빼앗지 못할 기쁨이란 오순절의 기쁨이었습니다. 자기들의 삶 전체를 맡아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죄에서 해방되는 기쁨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은 우리를 일하기에도 적합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나는 죄를 버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님 안에서 그 일을 할 수 있는 전능하신 그리스도를 소유할 수는 있습니다. 부디 오늘 이 시간 당신의 삶의 모든 영역을 붙들어 주님의 발 아래 놓으십시오. 그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소유하는 것은 모든 곤경에 대한 해답이 될 것입니다. 수만 가지의 사소한 내적 문제들도 있습니다. 성도들을 사랑하는 기쁨을 말합니다. 당신이 성령님의 기쁨 안에서 살기를 원한다면, 형제를 사랑하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하십시오.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하며.”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기쁨입니다. 그리스도는 당신이 생각하거나 이해하는 것, 구하거나 바라는 것 이상의 존재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 안에서 일하신다는 사실을 깨닫는 안식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11. 믿음의 승리

영적인 삶에서 믿음의 여러 단계를 설명합니다.

(1) 찾는 믿음, (2) 발견하는 믿음, (3) 기뻐하는 믿음입니다.

더 적합한 말로 (1) 애쓰는 믿음, (2) 안식하는 믿음, (3) 승리하는 믿음입니다.

어느 정도 그리스도께 기대를 거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한 그의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바라시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믿었습니다. 갈등하고 애쓰고 찾는 것, 이것은 당신의 믿음의 시작입니다. 애쓰고 추구하는 믿음이 안식하는 믿음으로 변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실재적이고 내주하시며 항상 함께 하시는 구주로 만드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이루어 주시는 데에 온 마음을 쏟으시는 것과 똑같이 또한 약속을 해 주시는 데에도 온 마음을 쏟으십니다. 약속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삶을 혹여 힘겨운 삶이라고 생각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는 자가 되기 위해 자기의 온 생애를 바쳤습니다. 온 집안 식구들과 함께 믿었습니다. 승리의 믿음이었습니다.

 

12. 기도의 능력의 뿌리

우리는 종종 진실한 기도를 드리지 않으면서도 계속 기도를 드립니다. 저는 여기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나는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기도를 하라고, 즉 하나님의 풍성함으로 더 높이 올라가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유창하고 매끄럽게 그리고 손쉽게 기도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나면, 성령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특징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무지를 깨닫기만 한다면,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백배로 간구해 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크신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기만 해도, 거기에는 경배의 측면이 있습니다. 기도의 또 다른 측면은 친교입니다.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중보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온 마음과 온 몸을 원하시니다. 내가 스스로 포기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원하시고, 그리스도도 우리를 원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족한 심정으로 자기의 자녀의 태도를 보시려고 오십니다. 제 이웃에게 복을 끼칠 수 있는 제사장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당신이 그리스도의 구원의 기쁨 속에서 영혼들의 짐을 질 수 있도록 강해지라는 목적에서 였습니다. 회개하지 않는다면, 승리하거나 축복 받을 생각을 말아야 할 것입니다.

 

13.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도록!

장차 그 나라를 바치실 날이 올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바로 이를 위해 일해 오셨고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이것이 기독교의 본질이요 영광입니다(고전 15: 24-28). 너무나 중요한 일에 한 몫하는 일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한가지 생각, 이 한가지 믿음, 이 한가지 목적, 이 한가지 기쁨이 우리 삶을 지배할 수 있도록 마음속으로 본향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먼저 당신의 마음과 삶에서 하나님을 제 자리에 놓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되시게 하라." 하나님이 모든 것이고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기도의 능력은 거의 대부분 기도를 받으시는 분이 누구인가에 대한 우리의 이해의 정도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바라는 영혼들에게 자기를 친히 계시해 주시고 자신의 임재를 실재로 만들어 주시는 일도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모든 일에 그분의 뜻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이 잘못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지만 그가 고통스러운 환경 가운데 놓이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 마음을 찌르거나 다치게 할 고통이나 상처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법을 배웠습니까?

 

세 번째로 그분의 능력을 신뢰해야 합니다.

 

네 번째로 당신은 모든 것을 그분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당신 안에 거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당신의 시간을 제물로 드리십시오. 당신의 관심사들을 제물로 드리십시오. 당신이 그렇게 그분을 열렬히 바란다면, 그분도 당신을 봉사의 새로운 능력으로, 그분과 함께 하는 사귐의 새로운 기쁨으로 끌어올려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 각 사람이 그분과 그리스도께 순종하고 이것을 우리의 매일의 삶으로 삼을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