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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 핑크

아더 핑크의 거듭남 3

2장 거듭남의 특징
 
 
● 허물과 죄로 죽은 사람과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난 사람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다양하다.
혼란스럽고 모순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이 주제에 대해 논쟁하기를 좋아한다.
 
종종 거듭남의 결과가 거듭남 자체와 혼돈되기도 한다.
이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을 모르기 때문에 거듭난 사람조차도
자신이 정말 죽음을 통과하여 생명에 이른 것인지 의심에 빠지기도 한다.
 
거듭남의 특징과 성격을 상고해보기에 앞서 우리는 먼저 그 부정적인 면을 다루어 보자.
 
● 거듭남과 개선의 차이는 무엇인가?
 
거듭남은 변화되고 향상되는 개선의 과정이 아니다.
개선은 사람이 하는 일이지만 거듭남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개선은 옛 본성으로부터 악을 제거하려고 시도하는 것이지만,
거듭남은 아예 새로운 본성이 주어지는 것이다.
 
개선은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 얻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거듭남은 성령님의 은혜로운 역사의 결과이다.
 
개선은 옛 것을 향상시키려고 애쓰지만,
거듭남은 순간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개선은 외적인 것이지만 거듭남은 내적인 것이다.
 
개선의 결과는 일시적이지만
거듭남의 결과는 영원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개선은 마음을 새로이 고쳐먹는 것이지만
거듭남은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는 것이다.
 
개선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나는 지루한 일이지만
거듭남은 즉시 일어나며 단번에 완성되는 일이다.
 
한 마디로 말해, 개선은 인간적인 일이며 거듭남은 하나님께 속한 일이다.
 
● 거듭남과 마음을 정결케 한다는 차이는 무엇인가?
 
거듭남은 단지 마음을 정결케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설교자들이 회중들에게 거듭남이 "마음의 변화"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듣는다.
그들의 의도는 좋지만, 사용한 언어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이러한 경우, 성경에서 권고하는 것처럼 '다른 말을 본받아 지키는 것이 좋다'(딤후1:13).
 
"마음의 변화'라는 표현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에스겔서 36장 26절의 말씀은 참으로 진실이다.
 
"또 새 영(new spirit)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new heart)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stony heart)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heart of flesh)을 줄 것이며"
 
사실 이 구절은 천년왕국의 시작 시점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긴 하지만,
어쨌든 마음의 변화와 같은 표현이 이 세대의 사람들과 관련되는 것처럼 말씀한 곳은
신약성경 어느 곳에도 없다.
 
심지어 여기 에스겔서에서 조차도 "마음의 변화'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
새 마음을 "주되'라고 하시고, 불신자의 굳은 마음을 "제하고'라고 하셨다.
 
● 거듭남이란 무엇인가?
 
거듭남은 단지 마음을 변화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새로운 마음을 받아 결과적으로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예레미야 17장 9절을 보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사용된 "심히(desperately)"라는 단어는 보통 "불치의(incurably)"라는 의미로 번역되는데,
여기서도 그러한 의미로 번역되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은 치료가 불가능한 정도로 부패되었기 때문에 결코 변화되지 않는다.
 
요한복음 3장 6절에서도 동일한 진리를 말하고 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육은 결코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말이 나무로부터 진화되는 일이 없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아담의 자손 또한 하나님의 아들로 진화될 수 없다.
거듭남은 어떠한 변화의 과정이 아니다.
거듭남은 온전히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거듭난 사람의 내면에는 여전히 죄악된 옛 본성이
그가 죽을 때까지 변화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거듭남은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이다.
거듭남은 인간에게 있는 어떤 것이 변화되거나 제거되는 것이 아니다.
거듭남은 인간 안에 전적으로 새로운 본성이 심겨지는 것이다.
 
영적인 영역에서의 출생도 육신의 출생과 마찬가지로
출생 그 자체가 생명의 문이 되며 새로운 존재로서의 출발점이 된다.
 
태어난 모든 존재는 그 부모의 특성을 이어받게 된다.
식물에게서 태어난 것은 식물이 되고, 동물에게서 태어난 것은 동물이 된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인간이 되는 것과 같이
하나님에게서 났으면 신성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각기 그 종류대로 종자를 내는 것이다.
 
● 이 세상의 절대 불변의 진리가 무엇인가?
 
이 기초적인 법칙은 절대 불변의 진리이고,
하나님 계시를 담은 성경의 첫 장에서 선언되고 있고, 또 계속해서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다.
 
즉 창세기 1장에서 우리는 창조의 각 순서를 따라 각기 종류대로 창조되었다는 표현을 9회 이상 볼 수 있다.
채소를 내는 땅에서는 각기 종류대로채소를 내었고,
공중의 새는 각기 종류대로 창조되었으며 ,
바다의 물고기도 각기 그 종류대로 지음을 받았다.
 
여기에 불신자들이 주장하는 진화론에 대한 하나님의 논박이 있다.
반복하지만, 모든 생명체는 각기 그 종류대로 종자를 낸다.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하나님의 자녀이다.
 
처음 출생 시, 인간의 모든 본성을 타고 난 것처럼
우리가 거듭날 때, 즉 하나님께로서 날 때에도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한 자로 태어나게 된다.
 
그렇다면, 거듭남은 새로운 성품, 신의 성품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거듭남은 바로 하나님 그분 자신의 생명이 인간의 영혼에 주어지는 것이다.
거듭남은 영적인 출생을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이 되게 한다.
 
● 만일 거듭남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고, 사람의 역할이 전혀 필요치 않다면 가엾은
죄인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이러한 가르침은 희망의 문을 급히 닫아버리는 것 같다.
이런 교리는 죄인을 절망 가운데로 몰아간다.
 
그렇다. 이것이 본래 의도이다.
이것은 인간의 교만을 깨부수는 하나님의 망치가 된다.
오만한 피조물을 먼지처럼 깨부수기 위해 의도된 것이다.
이것이 자기만족에 빠진 모든 창조물들을 숙연하게 만드는 성령님의 도구인 것이다.
 
인간 공로의 가장 깊은 뿌리지점에 놓인 하나님의 도끼인 것이다.
거듭남의 교리는 육신의 오만함에 대한 천국의 특효약이다.
이것은 인간이 자기 의와 자기만족으로부터 돌아서게 한다.
 
이 거듭남의 진리는 '네가 거듭나야하겠다"고 호소하고,
그 다음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걸까?
나 자신을 도울 만한 어떠한 것도 내 안에는 없다는 것을 알게 함으로써 절망케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넘어 밖을 보게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으시다.
 
● 죄인들은 무엇을 해야하는가?
 
그러므로 죄인은 무릎을 꿇고, 자신의 죄성과 무력함을 고백하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신을 긍휼히 여겨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이것이 거듭나기 위해 하나님께 구해야 하는 죄인의 책임이다.
 
마치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은혜와 지혜, 도움을 구하는 것이
본인의 책임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죄인들로 하여금 그 마음으로부터 간절히 부르짖게 하자!
하나님은 응답하실 것이다.
이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3)고 성경에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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