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1:1-2)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 지어다. -------------------------------------------------------------- 은혜!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단어입니다. 은혜의 의미를 한 문장으로 정리를 하면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무상으로 주어지는 것’을 은혜라 합니다. 평강은 그 은혜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므로 우리가 평강을 누리기 위해서는 은혜의 의미를 잘 정리하고 있어야 합니다. 먼저 우리에게 왜 은혜가 필요한가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왜 우리에게 은혜가 필요한가? 바로 죄 때문입니다. 죄가 인간에게 들어오기 전에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온 이후에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은혜가 된 것입니다. 물론 죄를 짓기 이전에 인간에게 필요한 사랑도 은혜를 근거로 한 사랑이지요. 우리에게 은혜가 필요하게 된 이유는 이러합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저주와 심판에 놓이게 됩니다. 그런데 인간 스스로 그 저주와 심판에서 놓여 날 길이 없습니다. 그것은 신앙의 연륜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더욱 더 오롯이 드러나는 것이지요? 도대체 우리 힘으로는 그 죄에 대한 욕구와 소원을 멈추거나 다스릴 수 가 없음을 저는 점점 더 절감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화목, 평강을 누리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그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혹자들은 하나님께서 예수를 보내셔서 그 예수를 믿으면 구원하고 예수를 믿지 않으면 구원하지 않으시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를 알아 볼 능력도, 요구도 준비도 하지 않은 자들이었습니다. 아예 죽어있던 자들이었습니다. 성경이 그 것을 명확하게 증언합니다.
(엡2:1) 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우리는 죽었던 자들입니다. 시체가 무슨 말을 알아듣습니까? 시체가 사리 분별을 하나요? 어떤 요구를 할 수 있습니까? 노력은요? 그렇게 우리는 완전히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 시체들에게는 은혜가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에 매다신 것입니다. 은혜는 그렇게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요1:17)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정확하지요? 율법으로 따지자면 우리는 모두 심판을 받아 죽어야 할 자들인데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를 입고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요3:17-18)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하나님은 죄인들과 하나님과의 화목을 위해서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빛이 세상에 왔는데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요1:1-5)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 하더라 (요1:10-11)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빛이 왔으나 세상은 그 빛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자기 백성은 당시의 이스라엘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포함한 하나님께서 구속하기로 한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창세전에 불림을 받았다는 그 하나님의 백성들이 전체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완전히 죽어있던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은혜가 필연적으로 필요했다는 것이지요. 저는 어렸을 적에 ‘하나님은 왜 하고 많은 민족들 중에 이스라엘을 택하셨는가?’하는 질문을 종종 하곤 했습니다. ‘왜 한국은 아닌가? 왜 이스라엘을 택하셨나? 나중에 성경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대답을 해 주십니다.
(신7:6-7) 6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요,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땅 위의 많은 백성 가운데서 선택하셔서, 자기의 보배로 삼으신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7 주님께서 당신들을 사랑하시고 택하신 것은, 당신들이 다른 민족들보다 수가 더 많아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들은 모든 민족 가운데서 수가 가장 적은 민족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를 대시는데 이스라엘이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잘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아주 보잘 것 없는 것들을 어떻게 당신의 능력을 입혀, 당신의 백성으로 만들어 내시는지를 알리시기 위해 가장 적은 민족 이스라엘을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특별함을 증거 하시기 위함이 아닌, 당신의 능력의 크심을 증명하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 우리가 받은 은혜는 하나님께서 시작하셔서 하나님이 마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2장과 로마서로 가서 확실하게 요약을 하고 확인도장을 찍고 가겠습니다.
(엡2:1-4) 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롬5:8-10)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우리가 뭔가 하나님을 위해 하려고 노력할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여전히 죄인이었고 하나님의 원수였을 때 우리를 위해 예수가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죽어있던 자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그 죽음에서 벗어나려 하지도 않았고 세상 죄 속에서 몸을 굴리며 살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를 살려주셨습니다. 영어 성경으로 보면 4절의 시작이 but로 시작합니다. 헬라어로는 ‘데’ 접속사 ‘그러나’로 시작한다. 우리는 그렇게 모두 시체였습니다. 시체는 말을 못 알아듣습니다. 혹자는 구원을 당신은 지금 죽을병에 걸려있습니다. 그 병은 약을 먹어야 낫습니다. 자 하나님의 은혜로 약이 만들어졌습니다. 약이 여기 있습니다. 당신이 입만 벌려 받아먹으면 당신은 살 수 있습니다. 라고 구원을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건 복음이 아닙니다. 시체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은혜를 주시는 분 쪽에서 먼저 살려내어 복음을 들을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이란 전적으로 베푸는 쪽에서 시작해서 베푸는 쪽에서 끝을 내는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얼마나 은혜를 오해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겠습니다. 에베소서 2장 2절을 보면 그렇게 죽어있던 자들을 불순종의 아들들이라 일컫습니다. 불순종의 아들들이란 하나님을 비롯해서 자기 이외의 어떤 존재에게도 순종할 수 없는 자, 자기가 왕인 자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왕의 자리에게 쫓아내고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 했던 아담의 후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이들을, 아니 하나님까지도 자기의 목적을 이루어 주기 위한 엑스트라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인간은 모두 자기를 위해서만 삽니다. 자기를 위해 이웃을 밟습니다. 심지어 부모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하지요? 자식은 부모가 자기를 나타내는 최고의 자기표현입니다. 따라서 엄밀히 따지면 부모의 자식사랑도 결국에는 자기를 위함인 것입니다. 자기가 이루지 못한 것을 자식을 통해서 이루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종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가진 것 이외의 것을 가진 신에게 주문을 외우거나 뭘 갖다 바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받아내는 것이 인간이 만들어낸 종교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도 그리로 흐르고 있습니다. 그런 인간들을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여전히 불순종의 자식들로 살아가던 자들을 뒤집어서 예수를 알아보게끔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 자기가 아닌 진짜 왕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된 자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기꺼이 받기를 원하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을 은혜 받은 자, 그리스도인, 순종의 사람들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믿음을 심으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평강, 평화, 화목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자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6:5)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막12:30)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이것이 바로 은혜를 주시는 목적인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자기가 여전히 주인이고, 신이며, 폭군인 그런 사람으로 계속 살라고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을 전심을 다해 목숨을 다해 사랑하라고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고후5:14-17)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휘어잡습니다. 우리가 확신하기로는,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으니, 모든 사람이 죽은 셈입니다. 15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이제부터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들을 위하여 살아가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을 위하여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그분을 위하여 살아가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는 아무도 육신의 잣대로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육신의 잣대로 그리스도를 알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보편 구원론 자들이 15절의 ‘모든’ 이라는 말을 걸고 ‘봐라,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 죽으셨고 모든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택하신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신해서 죽으신 것이지 모든 죄인들을 위해 죽으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죽어야 할 모든 인간 중에 어떤 한 무리를 택하시고 그들에게만 은혜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버리신 것입니다. 새 창조가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재창조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심은 이제는 우리가 불순종의 아들들로 살지 않고 예수를 위해 살게 하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게 은혜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은혜 받으러 왔다고 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내가 당신께 이 정도 성의를 보일 테니 내가 원하는 것 주쇼. 치성 드릴 테니 우리 아들 대학 붙여 주쇼!’ 이거 아닙니까? 그래서 그 요구가 들어지면 은혜 받았다고 외치지요. 여전히 똑같이 불순종의 아들들이 행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여전히 그 사람의 왕은 자기 배요, 자기 자신인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욕심에 순종하는, 불순종의 자녀인 것입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완전히 다시 태어난 자들입니다. 그 은혜를 아는 자들은 절대 그렇게만 살수는 없습니다.‘하나님, 제 삶 속에서 저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말게 하시고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이것이 바로 은혜를 받은 자들의 고백인 것입니다. 그 은혜는 모두에게 동일한 완성품으로 주어집니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그 은혜가 편파적으로 우리에게 임하겠습니까? 그 은혜가 어떤 사람에게는 더 풍족하게, 어떤 사람에게는 조금 부족하게 주어지겠습니까? 병으로 고통당하며, 감옥에 끌려가 고생하고, 걸핏하면 매를 맞던 바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그렇게 고생하던 바울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풍족하게, 완성품으로 주어졌다고 말씀하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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