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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세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성경에 나와 있는 예수님의 물질관을 살펴보면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동안 우리들이 들어 왔던 설교는 예수님을 잘 믿으면 주님이 축복하신다고 들어왔다. 그 중에서 물질에 대한 축복은 당연히 한국 교회 강단에서 빼 놓지 않고 설교하는 메뉴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물질에 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물질관을 살펴보면 우리가 그동안 들었던 물질의 축복은 바알 종교이거나 기복주의이다. 즉 다른 복음인 것이다.
산상 수훈을 설명하시면서 예수님은 돈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 6:19~24)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마 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마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 6: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마 6: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이것이 무슨 말씀인가?

‘눈은 몸의 등불이니.....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이것은 성도들의 물질관에 관한 말씀이다. 돈에 대한 바른 관점, 물질관이 바르지 못하면 영적인 눈이 어두워진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예수님의 물질관은 무엇인가?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은 선언하신다. 우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긴다. 재물을 섬긴다. 섬긴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하나님과 재물을 같은 위치에 두고 둘 중 하나만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이다.

눅 18장과 눅 19장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한다.
눅 18장의 부자 관원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믿었지만 돈을 섬기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결국 돈과 예수님을 선택하는 기로에서 돈을 버리고 예수님을 선택해야 자신이 원했던 영생을 얻을 수 있었지만 돈을 버리지 못했다. 결국 그는 주님을 따르는 영생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눅 19장의 삭개오는 세리장으로서 돈의 노예가 되어 살았던 사람이였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돈을 버리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길 수 있었다.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아멘!

그럼 눅 18장을 살펴보자.


(눅 18:18~30) “어떤 관원이 물어 가로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눅 18:1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눅 18:20)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눅 18:21)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눅 18: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눅 18:23) 그 사람이 큰 부자인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눅 18:24) 예수께서 저를 보시고 가라사대 재산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눅 18:25)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눅 18:26) 듣는 자들이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눅 18:27) 가라사대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눅 18:28)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눅 18:29)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눅 18:30)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어떤 관원이 물어 가로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말씀하시는 것처럼 부자 관원은 영생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이 부자 관원에게 영생을 얻으려면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신다.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부자 관원의 이 대답으로 보아서 부자 관원은 오늘 날 훌륭한 신자이다. 영생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영생을 얻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던 사람이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한 가지가 부족하다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주님은 이 부자 관원에게 왜 이렇게 말씀하셨는가?
이 부자 관원이 영생에 관한 관심이 많고, 영생을 얻기 위하여 열심히 신앙생활 했지만 이 부자 관원이 섬기는 것은 재물이지 주님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이 큰 부자인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영생에 관하여 기록된 율법을 다 지켜행 할 정도로 열심히 대단하였던 이 사람이 주님께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근심한다.

왜 근심하는가?

“그 사람이 큰 부자인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이 사람은 영생을 얻기 위하여 율법을 다 지켜행할 정도로 열심히 신앙생활 했지만 예수님이 주인된 삶, 예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니라 돈을 섬기는 사람이였던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영생을 얻기 위한 삶을 살았던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의 진정한 모습은 재물을 섬기는 사람이였던 것이다.

우리는 이 부자 관원처럼 영생을 갈망하는가?
이 부자 관원은 율법을 다 지켜행 할 정도로 영생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많은 재물을 내려놓고 예수님만을 섬기는 삶을 살지는 못했다.
이 사람의 결국은 무엇인가?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고, 예수님을 섬기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했다.

우리는 재물을 섬기지 않고 예수님만 섬기는 삶을 살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기는 삶을 살고 있지 않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예수님은 이 부자 관원이 주님을 따르지 못하고 떠나가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눅 18:24-25) “예수께서 저를 보시고 가라사대 재산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눅 18:25)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재산이 있는 자, 부자는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말씀하신다.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오직 주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자에게 구원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베드로와 제자들이 이렇게 말한다.
(눅 18:28)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다고 말한다.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인가?
(눅 18:29-30)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눅 18:30)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우리의 주인은 누구인가?
우리는 하나님을 재물과 겸하여 섬기는 자는 아닌가?
자신의 주인이 누구인지 심각하게 생각하여야 한다.
부자 관원처럼, 자신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신앙 생활하다가 그 날에 가서야 자신의 주인이 예수님이 아니라 물질이였음을 알게 된다면 그 때는 기회가 없다.
우리는 이 부자 관원처럼 착각하며 살고 있지는 않는가?
진정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시고 물질은 언제든 내려놓을 수 있는가?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한다.

(눅 18:27) “가라사대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서 주님의 성령이 우리의 마음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면 우리는 물질을 초월하여 오직 예수님만을 참 주인으로 섬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의를 의지하였던 부자 관원을 통하여 자신의 힘으로는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부자 관원과 제자들에게는 자신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주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셨지만, 자신의 소유를 다 버리고 주님을 쫓으라고 말씀하셨지만 삭개오에게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눅 19:1~10)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눅 19: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눅 19:3)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눅 19:4)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눅 19: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눅 19: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눅 19:7)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눅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눅 19: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눅 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즐겁게 영접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난 후에 그의 물질관은 바뀌게 되었다. 세리장으로서 돈의 노예로 살아왔던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후에 돈이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인이 된 사건이다.
예수님은 이런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라고 말씀하신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예수님의 잃어버린 양인가?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목자를 따른다.
즉 돈을 따라, 돈이 주인된, 마귀가 주인된 삶을 살다가 진짜 주인이 나타나서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목자되시는 주님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고 주인이 바뀌었는가?
자신의 내면을 심각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부자 관원처럼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라고 착각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 가지고 있는 재물을 다 잃어버린다해도 지금 느끼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가? 우리가 행복해 하는 것이 진정 예수님 때문인가?
우리 자신들이 물질에 매여 있다면, 돈이 있고 없는 것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고, 염려 근심이 달라지고, 행복이 달라진다면 우리는 필시 겉으로는 신앙인이지만 속은 재물을 주인 삼아 사는 것이다.
우리가 진짜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 받았다면 삭개오처럼 우리의 물질관도 바뀌었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물질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딤전 6:8~12)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 6: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딤전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딤전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사도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야고보 사도는 말세에 재물을 쌓은 부자들에게 경고한다.

(약 5:1~3)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약 5:2)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 먹었으며 /(약 5:3)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우리는 이 마지막 주님의 재림의 때에 재물을 어디에 쌓고 있는가?
예수님은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바른 물질관이라고 말씀하신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신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들을 구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이 말씀을 믿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기를, 예수님이 우리의 온전한 참 주인이 되시기를 구하는가? 하나님의 의를 구하고 있는가? 아니면 주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들을 여전히 구하는가?

(마 6:31~33)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 6: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리스도인들의 처음도 마지막 시험도 물질의 시험이다.
계 13장은 666표를 설명하고 있다.
이 표를 받지 못한 사람은 매매를 할 수 없어서 살아가기가 힘든 세상이 온다는 것이다.

(계 13:15~18)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계 13:16)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계 13: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계 13: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우리가 지금도 물질, 곧 돈을 이기지 못한다면 교회가 환란을 받는 시기에 모두가 666표를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물질관은 무엇인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이다.
오직 돈을 이기고 예수님만을 섬길 때 구원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는 물질의 축복을 너무나 좋아한다. 그것은 바알 종교이고 다른 복음이지 기독교가 아니다. 목사들 자신들이 재물에 눈이 멀어 돈을 섬기고 있기 때문에 성도들에게도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돈을 섬기라고 말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부자가 되었지만 복음의 능력은 잃어버렸다.
목회자들이 부를 축척하고 돈의 힘을 즐기고 있지만 옆의 가난한 교회, 가난한 목사, 가난한 성도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너도 억울하면 성공하라는 세상 논리를 가지고 있다.

오늘 날 주님이 이런 목사들, 이런 교회를 바라보고 어떤 말씀을 하실까?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지금 돈을 이기지 못하면, 지금 예수님만 우리의 주인되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마지막 적 그리스도가 666 표를 받게 할 때 많은 교회들이 많은 성도들이 배교하게 될 것이다. 마귀는 처음부터 사망의 세력을 잡고 죽기를 무서워함으로 종노릇하는 자들 위에 주인으로 군림하여 왔다(히 2:15). 예수님은 그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우리들을 자유케하시려 오셨지만, 수 많은 교회들이, 성도들이 여전히 예수님만을 주인 삼는 삶을 살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앞으로도, 마지막 적 그리스도가 활동하는 때도 666표를 받지 않는 사람들에게 매매를 못하게함으로 말미암아 죽기를 무서워하는 자들을 사망권세로 묶으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자신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주인은 재물인가? 예수님인가?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