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요 3:16~31)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 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 3: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요 3: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사랑하신 이처럼은 어떤 사랑입니까? 독생자를 주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왜 독생자를 주셨습니까?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어려서부터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뼛속 깊이 체득한 원리가 하나 있습니다.
이 원리가 무엇일까요?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원리입니다. 이 원리를 조금 어렵게 말하면 ‘인과율’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심히 고생을 하면 뭐라고 합니까? ‘아이고 내가 전생에 무슨 죄가 많아가지고...’ 이렇게 말하지요. 그 고생의 원인을 전생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내가 잘못한 것이 이 고생을 할 만큼 잘못하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어려운 일이 닥치니 틀림없이 전생에서 무슨 죄를 많이 지은가 보다, 라는 생각이 우리에게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체계를 ‘행함의 체계’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체계와는 정 반대되는 원리입니다.
예) 흥부와 놀부-놀부가 흥부의 부자 된 비결을 알고 방법론으로 제비 다리를 부러뜨림.
성공시대-성공한 사람들의 원인과 방법을 찾아서 우리도 그렇게 하여 성공을 하자.
이러한 세상의 원리에 지배되어 살고 있기에 성경을 보아도 사람의 행함으로 어떻게 할까, 하는 원리를 찾기에 바쁜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제목들이 축복받는 비결, 기도 응답의 비결, 교회 성장의 비결, 건강의 비결, 이러한 비결들이 성경에 있다는 것입니다. 몇 가지의 행함의 원리만 찾으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개척교회 목사라면 성경을 볼 때 무엇만 보이겠습니까?
교회 성장이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아 사도행전에 보니까 이렇게 이렇게 하니까 되더라는 식의 성경을 인용합니다. 그렇게 하여 사람이 많아져서 예배당을 지으려고 하면 온통 성경에서 예배당 짓는 일을 성전 짓는 일이라고 하면서 나무를 가져다가 내 집을 지으라는 식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만약 선교 단체 같으면 자신들의 단체가 가장 성경적이다, 라는 것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성경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자들(행함의 원리를 가진 자들) 때문에 예수님이 죽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함의 원리를 가지고 성경을 통하여 얻어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생각이 있다면 영생을 얻기 원하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어느 누구라도 죽는다는 사실 앞에서 영생의 소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간절하겠습니까? 그래서 다른 사람은 다 죽어도 나는 살아남아야 해, 다른 사람은 구원 얻지 못해도 나는 구원 얻어야 해, 어떻게 하면 구원 얻을까? 그런 생각으로 성경을 보다가 보니 눈에 번쩍 띄는 구절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떤 말씀입니까? 오늘 읽은 3장 16절 말씀입니다.
아마 가장 많이 외우는 구절 중에 몇 손가락 안에 들어 갈 것입니다. 아예 노래로 만들어 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그래,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 그래서 자기 아들을 보내 주시고 그 아들이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 지셨기에 이제 누구든지 예수만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 야, 이렇게 쉬운 구원의 길이 있었구나. 그러면 내가 믿어야지 이렇게 해서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전도할 때도 믿기만 하면 되는데 그것도 못 믿느냐, 하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에서 가장 큰 맹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요한복음을 처음부터 들어오셨으면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일 큰 맹점은 ‘내가 믿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직 행함의 원리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 주어서 구원 얻었다는 생각입니다. 구원 못 받은 자는 그 쉬운 것을 왜 못 하느냐, 그냥 믿기만 하면 되는데 왜 못 믿느냐,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행함의 원리 속에서 믿음을 이해하기가 불가능합니다. 성경에서 믿음이란 말은 행함과 대조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사람의 행함의 차원이 아닌 다른 차원이 있다는 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대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여 구원의 길을 만들어 놓았으니 네가 믿고 영접하고 선택하라는 식의 전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큰 맹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이해하거나 믿는다는 사실이 불가능 합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찾아보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하사” 라고 말씀 하시는 이 사랑을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3:16절에 강조점을 두라면 어디에 두겠습니까? 아주 자연스럽게 나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믿는 자는’이지요.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스스로 믿을 자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12절에서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그 영접이 사람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1:13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의 믿는 자도 사람의 능력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요 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습니다.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믿으십시오, 하는 것은 마치 헤엄을 칠 줄 모르는 자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헤엄을 쳐라, 헤엄을 쳐라, 하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가 없다는 것이 성경의 증거입니다. 18절을 봅시다.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 하지만 믿지 아니하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19절에서 사람들이 믿지 아니하는 것은 어두움을 더 좋아하기에 빛으로 나아오지 않는 것이랍니다.
(요 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빛보다 어두움이 좋은데 어떻게 스스로 빛으로 나아 올 수 있습니까? 여기서 ‘어두움의 일’이란 우리가 세상에서 쾌락적인 그런 일로만 보는데,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이 어두움의 일을 ‘사람의 이성과 견해’로 보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과 사람의 견해는 공짜는 없다, 라는 행함의 원리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기에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모르는 것입니다.
(요 3:16~31)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아멘! 하나님의 이처럼 사랑하신 사랑은 죄로 말미맘아 멸망하는 우리에게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독생자를 주신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신 사랑’입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1~9)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엡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엡 2: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엡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엡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그 때에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자들이였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어 있던 자들이였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그 사랑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하시켜서 함께 하늘에 앉히신 사랑입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 사랑으로 우리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 된 것입니다.
(요 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롬 5:6~11)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롬 5: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롬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롬 5: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분이 주님이시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님이십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붙드시며 운행하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그런 주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습니다. 어떤 사랑입니까? 세상의 생명을 위해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표적과 신령한 은사로, 전능하신 능력으로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심으로, 십자가 지심으로,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이처럼 사랑하신 사랑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미련한 것입니다.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도하 나나님의 능력입니다. 은사가, 신령한 표적이, 권능이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 십자가의 도가 미련스럽게 보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미련스럽게 십자가의 도를 따르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복음과는 반대되는 논리를 가지고 복음 전하기 위해 능력을 받으라고 합니다.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성공하라고 합니다. 축복받으라고 합니다. 성경 어디에 그렇게 하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까?
우리가 복음을 더 잘 전하기 위해 축복을 받아야합니까?
우리가 주님께로 세상 사람들을 인도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세상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힘을 가져야합니까? 그런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자신도 모르는 탐욕이 가득할 것입니다. 오늘 날 이런 번영신학, 기복신학, 신사도 운동을 하는 자들이 복음을 전한다는, 예수님을 전한다는 명목하여 예수님을 팔아 먹는 십자가의 원수된 행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 3:18~19)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빌 3: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가장 위대한 복음 전도자인 예수님의 제자들, 사도 바울은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상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하여 세상에서 무엇을 가졌습니까?
오히려 복음이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하여 절제하고, 세상의 것들을 다 버렸습니다.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은사로, 권능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 자기희생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요1장에서 참 빛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말씀합니다.
참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어둠뿐인 세상을 비추셨습니다.
우리는 참 빛이신 그 빛을 보고 주님 앞에 나아가 생명을 얻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의 눈을 열어주셔서 주님을 보게 하셨습니다.
(요 1:9~13)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요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요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그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우리 마음에 비춰주셔서 그 영광의 복음의 광채 곧 참 빛을 보고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우리가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아멘!
(마 5:14~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마 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마 5:16, 개정)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이것이 주님의 명령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사람들 앞에 빛을 비출 수 있습니까?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아멘!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아멘!
우리에게서 착한 행실이 나올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들은 하나님과 원수된 것들, 생각하는 것이, 말하는 것이 행동하는 것이 죄입니다.
그런 주님이 말씀하시는 ‘너희 착한 행실’은 무엇입니까?
(계 19: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성도들의 옳은 행실 곧 세마포 옷입니다. 예수로 옷 입는 삶입니다.
예수로 옷을 입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고전 1:27~31)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고전 1: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의를 힘입어, 주님을 나타내고 주님으로 살아내는 삶이 성도의 옳은 행실입니다. 이런 삶을 살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보게되는 것입니다.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아멘!
이것을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사 60:1~3)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사 60:2)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사 60:3)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주님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일 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요일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주님은 우리에게 이 세상을 본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세상에 동화도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리혀 우리의 몸을, 우리의 자아를, 육신의 정욕을, 우리의 뜻을, 우리의 비전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롬 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킹흠정) “너희는 이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오직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받으실 만하며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갈 1:4~5)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갈 1:5)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주님은 우리에게 오히려 세상을 이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세상을 이기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우리의 믿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 5:1~6)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요일 5: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요일 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일 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 5: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요일 5: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어떤 믿음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이처럼 사랑하신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요 6:51~58)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요 6:52)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요 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 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 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요 6: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요 6: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이것이 주님이 세상을 사랑하신 사랑입니다. 이처럼 사랑하신 사랑입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그러나 이 진리를 따르지 않는 자들은 빛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진리를 따르는 자들은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빛으로 나온다고 말씀합니다.
(요 3: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요 3: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우리는 어떤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까?
오직 진리이신, 참 빛이신 주님을 따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아멘!
(요 3:16~31)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 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 3: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요 3: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사랑하신 이처럼은 어떤 사랑입니까? 독생자를 주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왜 독생자를 주셨습니까?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어려서부터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뼛속 깊이 체득한 원리가 하나 있습니다.
이 원리가 무엇일까요?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원리입니다. 이 원리를 조금 어렵게 말하면 ‘인과율’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심히 고생을 하면 뭐라고 합니까? ‘아이고 내가 전생에 무슨 죄가 많아가지고...’ 이렇게 말하지요. 그 고생의 원인을 전생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내가 잘못한 것이 이 고생을 할 만큼 잘못하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어려운 일이 닥치니 틀림없이 전생에서 무슨 죄를 많이 지은가 보다, 라는 생각이 우리에게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체계를 ‘행함의 체계’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체계와는 정 반대되는 원리입니다.
예) 흥부와 놀부-놀부가 흥부의 부자 된 비결을 알고 방법론으로 제비 다리를 부러뜨림.
성공시대-성공한 사람들의 원인과 방법을 찾아서 우리도 그렇게 하여 성공을 하자.
이러한 세상의 원리에 지배되어 살고 있기에 성경을 보아도 사람의 행함으로 어떻게 할까, 하는 원리를 찾기에 바쁜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제목들이 축복받는 비결, 기도 응답의 비결, 교회 성장의 비결, 건강의 비결, 이러한 비결들이 성경에 있다는 것입니다. 몇 가지의 행함의 원리만 찾으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개척교회 목사라면 성경을 볼 때 무엇만 보이겠습니까?
교회 성장이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아 사도행전에 보니까 이렇게 이렇게 하니까 되더라는 식의 성경을 인용합니다. 그렇게 하여 사람이 많아져서 예배당을 지으려고 하면 온통 성경에서 예배당 짓는 일을 성전 짓는 일이라고 하면서 나무를 가져다가 내 집을 지으라는 식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만약 선교 단체 같으면 자신들의 단체가 가장 성경적이다, 라는 것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성경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자들(행함의 원리를 가진 자들) 때문에 예수님이 죽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함의 원리를 가지고 성경을 통하여 얻어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생각이 있다면 영생을 얻기 원하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어느 누구라도 죽는다는 사실 앞에서 영생의 소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간절하겠습니까? 그래서 다른 사람은 다 죽어도 나는 살아남아야 해, 다른 사람은 구원 얻지 못해도 나는 구원 얻어야 해, 어떻게 하면 구원 얻을까? 그런 생각으로 성경을 보다가 보니 눈에 번쩍 띄는 구절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떤 말씀입니까? 오늘 읽은 3장 16절 말씀입니다.
아마 가장 많이 외우는 구절 중에 몇 손가락 안에 들어 갈 것입니다. 아예 노래로 만들어 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그래,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 그래서 자기 아들을 보내 주시고 그 아들이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 지셨기에 이제 누구든지 예수만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 야, 이렇게 쉬운 구원의 길이 있었구나. 그러면 내가 믿어야지 이렇게 해서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전도할 때도 믿기만 하면 되는데 그것도 못 믿느냐, 하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에서 가장 큰 맹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요한복음을 처음부터 들어오셨으면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일 큰 맹점은 ‘내가 믿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직 행함의 원리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 주어서 구원 얻었다는 생각입니다. 구원 못 받은 자는 그 쉬운 것을 왜 못 하느냐, 그냥 믿기만 하면 되는데 왜 못 믿느냐,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행함의 원리 속에서 믿음을 이해하기가 불가능합니다. 성경에서 믿음이란 말은 행함과 대조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사람의 행함의 차원이 아닌 다른 차원이 있다는 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대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여 구원의 길을 만들어 놓았으니 네가 믿고 영접하고 선택하라는 식의 전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큰 맹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이해하거나 믿는다는 사실이 불가능 합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찾아보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하사” 라고 말씀 하시는 이 사랑을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3:16절에 강조점을 두라면 어디에 두겠습니까? 아주 자연스럽게 나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믿는 자는’이지요.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스스로 믿을 자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12절에서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그 영접이 사람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1:13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의 믿는 자도 사람의 능력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요 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습니다.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믿으십시오, 하는 것은 마치 헤엄을 칠 줄 모르는 자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헤엄을 쳐라, 헤엄을 쳐라, 하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가 없다는 것이 성경의 증거입니다. 18절을 봅시다.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 하지만 믿지 아니하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19절에서 사람들이 믿지 아니하는 것은 어두움을 더 좋아하기에 빛으로 나아오지 않는 것이랍니다.
(요 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빛보다 어두움이 좋은데 어떻게 스스로 빛으로 나아 올 수 있습니까? 여기서 ‘어두움의 일’이란 우리가 세상에서 쾌락적인 그런 일로만 보는데,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이 어두움의 일을 ‘사람의 이성과 견해’로 보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과 사람의 견해는 공짜는 없다, 라는 행함의 원리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기에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모르는 것입니다.
(요 3:16~31)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아멘! 하나님의 이처럼 사랑하신 사랑은 죄로 말미맘아 멸망하는 우리에게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독생자를 주신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신 사랑’입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1~9)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엡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엡 2: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엡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엡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그 때에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자들이였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어 있던 자들이였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그 사랑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하시켜서 함께 하늘에 앉히신 사랑입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 사랑으로 우리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 된 것입니다.
(요 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롬 5:6~11)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롬 5: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롬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롬 5: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분이 주님이시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님이십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붙드시며 운행하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그런 주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습니다. 어떤 사랑입니까? 세상의 생명을 위해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표적과 신령한 은사로, 전능하신 능력으로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심으로, 십자가 지심으로,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이처럼 사랑하신 사랑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미련한 것입니다.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도하 나나님의 능력입니다. 은사가, 신령한 표적이, 권능이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 십자가의 도가 미련스럽게 보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미련스럽게 십자가의 도를 따르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복음과는 반대되는 논리를 가지고 복음 전하기 위해 능력을 받으라고 합니다.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성공하라고 합니다. 축복받으라고 합니다. 성경 어디에 그렇게 하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까?
우리가 복음을 더 잘 전하기 위해 축복을 받아야합니까?
우리가 주님께로 세상 사람들을 인도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세상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힘을 가져야합니까? 그런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자신도 모르는 탐욕이 가득할 것입니다. 오늘 날 이런 번영신학, 기복신학, 신사도 운동을 하는 자들이 복음을 전한다는, 예수님을 전한다는 명목하여 예수님을 팔아 먹는 십자가의 원수된 행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 3:18~19)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빌 3: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가장 위대한 복음 전도자인 예수님의 제자들, 사도 바울은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상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하여 세상에서 무엇을 가졌습니까?
오히려 복음이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하여 절제하고, 세상의 것들을 다 버렸습니다.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은사로, 권능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 자기희생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요1장에서 참 빛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말씀합니다.
참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어둠뿐인 세상을 비추셨습니다.
우리는 참 빛이신 그 빛을 보고 주님 앞에 나아가 생명을 얻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의 눈을 열어주셔서 주님을 보게 하셨습니다.
(요 1:9~13)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요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요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그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우리 마음에 비춰주셔서 그 영광의 복음의 광채 곧 참 빛을 보고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우리가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아멘!
(마 5:14~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마 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마 5:16, 개정)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이것이 주님의 명령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사람들 앞에 빛을 비출 수 있습니까?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아멘!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아멘!
우리에게서 착한 행실이 나올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들은 하나님과 원수된 것들, 생각하는 것이, 말하는 것이 행동하는 것이 죄입니다.
그런 주님이 말씀하시는 ‘너희 착한 행실’은 무엇입니까?
(계 19: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성도들의 옳은 행실 곧 세마포 옷입니다. 예수로 옷 입는 삶입니다.
예수로 옷을 입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고전 1:27~31)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고전 1: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의를 힘입어, 주님을 나타내고 주님으로 살아내는 삶이 성도의 옳은 행실입니다. 이런 삶을 살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보게되는 것입니다.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아멘!
이것을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사 60:1~3)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사 60:2)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사 60:3)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주님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일 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요일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주님은 우리에게 이 세상을 본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세상에 동화도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리혀 우리의 몸을, 우리의 자아를, 육신의 정욕을, 우리의 뜻을, 우리의 비전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롬 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킹흠정) “너희는 이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오직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받으실 만하며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갈 1:4~5)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갈 1:5)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주님은 우리에게 오히려 세상을 이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세상을 이기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우리의 믿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 5:1~6)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요일 5: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요일 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일 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 5: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요일 5: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어떤 믿음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이처럼 사랑하신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요 6:51~58)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요 6:52)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요 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 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 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요 6: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요 6: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이것이 주님이 세상을 사랑하신 사랑입니다. 이처럼 사랑하신 사랑입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그러나 이 진리를 따르지 않는 자들은 빛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진리를 따르는 자들은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빛으로 나온다고 말씀합니다.
(요 3: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요 3: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우리는 어떤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까?
오직 진리이신, 참 빛이신 주님을 따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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